2024 통독/이사야

이사야 42-44장

WLJF(welovejesusforever) 2024. 8. 7. 11:16

 

<이사야 42장>

 

예수 그리스도에게서 성취된 네 편의 종의 노래 가운데 첫 번째 노래(42:1-9, 49:1-13, 50:4-9, 52:13-53:12)

 

"여호와의 종"

대게 백성들 전체에 대한 호칭(41:8-9, 42:19, 43:10, 44:1-2,21,26, 45:4, 48:20)

 

때로 이 종은 백성 전체와는 구별되며

이스라엘과 이방을 섬기는

소명을 받은 이스라엘 안의 어느 특정한 인물(49:5-6, 50:10, 52:13, 53:11)

 

두 번째 종의 노래(49:1-13)또한 이 종을 이스라엘이라고 부른다(49:3)

 

백성 전체의 대표이자 전형으로 간주

 

이 종은 메시아적인 인물이라는 전통적인 기독교적 해석이 왜 이사야의 의도를 정확히 파악하고 있는지를 보여준다.

1. 다윗 언약에서 다윗의 계승자들은 백성 전체 대표, 상징 - 이 종은 다윗의 계승자들의 패턴을 따른다.

이스라엘은 하나님의 아들(출 4:22-23)이며 왕은 즉위할 때 하나님의 아들(삼하 7:14)이 된다.

 

2. 이방 세계 전체에 걸친 자신의 통치의 확장을 이루며(42:1-4, 52:13-15)이는 (삼하 7-12장)에서 다윗 가문의 메시아의 사역

 

3. 후대의 선지자들은 다윗의 한 후사, 메시아를 그 종으로 묘사(겔 34:23-24, 37:25; 학 2:23; 슥 3:8)

- 이사야서의 이 종을 메시아적인 인물로 보는 해석을 뒷받힘. 

이 종은 왕의 역할 외에도, 선지자의 역할(사 49:1, 50:4,10)과 제사장의 역할(53:11)을 지닌다

 

이사야의 주제(이름 속의 의미)처럼,

이사야의 청중은 하나님이 포로들을 회복시키신 다음

포로 귀환 뒤 어떤 밝혀지지 않은 시점에 일으키실 종을 통해

이스라엘의 사명을 성취하실 것임을 분명히 알고 있으며

이것이 그들의 이야기의 지향점.

 

정의(42:3): 성경에서 정의란 하나님의 도덕법과 일치하는 방식으로 상호 의무를 이행하는 것을 의미.

성경적 정의는 완벽한 인간 사회를 창조(신 10:18, 사 1:17, 16:5, 32:1-2, 61:8; 슥7:9)

메시아는 개인적 영적 용서와 건강뿐만 아니라, 지상의 모든 정부에 걸친 완벽한 정의의 확립도 가져올 것이다.
- 여호와께서 말씀하시되 오라 우리가 서로 변론하자 너희의 죄가 주홍 같을지라도 눈과 같이 희어질 것이요 진홍 같이 붉을지라도 양털 같이 희게 되리라.

 

42:4 - 이 종은 자신의 사명의 요구로 인해 약해지지 않을 것이다.

섬들 - 지구의 가장 오지에 사는 민족(이방인)들

 

"여호와의 영광이 나타나고 모든 육체가 그것을 함꼐 보리라 이는 여호와의 입이 말씀하셨느니라"- (사 40:5)

- 고레스의 승리와 종의 승리는 모두 참된 역사의 주님을 영화롭게 하고 인간의 지배에 대한 우상 숭배적 주장의 신뢰성을 떨어뜨린다.

하나님은 하나님의 영광을 다른자에게 주지 아니하며(42:8), 새 일을 알려 주셨다. 불가능해 보이는 새로운 예언들에 관심을 집중시키면서 이전의 예언들을 자신의 신뢰성의 증거로 인용하신다(41:22)

 

새 노래(42:10) - (cf. 시 33:1-3) 

그의 찬송을 전할지어다(12절) - 아름다운 덕을 선포하게 하려 하심이라(벧전 2:9)

 

42장 1-4절에서는 여호와의 종이 세상의 구주이지만, 그 종에게 구원이 필요하다.

24절에 따르면 이 종이 곧 야곱/이스라엘이다.

이 종은 이스라엘 민족이 되지 못한 참 이스라엘이다(42:1-9) 이 종만이 하나님의 백성을 위한 언약이자 열방을 위한 빛으로서 많은 맹인의 눈을 밝힐 자격이 있다(42:6-7)

 

이스라엘은 열방을 하나님께로 이끌지 못하고(사 2:2-5),

스스로 치유하기 불가능할만큼 열방에게 노략을 당한다(신 28:25-34, 왕하 24:8-25:21)


(42장)

 

"하나님의 종된 자" 는 하나님이 택하시고

붙드시는, 하나님의 영이 함께하시는

진실로 정의를 행하며 세상에 정의를 세우는 사명을 받은 자(들)이다(1-4절)

 

하지만 창세 이후,

죄가 들어옴에 따라 하나님을 미워하기 시작한 우리는

우리의 사명을 다할 수 없었다.

하나님의 열심이 필요했고, 할 수 있는건 하나도 없었다.

하나님을 찬양(10-12절)하는 것, 하나님께 돌아가는 것이

전부였지만 그 또한 하나님께서 말씀으로(5-7절) 이루셨다

 

하나님 앞에 어떤 수식어를 갖다 붙여도

하나님을 표현하기에는 턱없이 부족하다.

허나님은 신들 중의 신이 아니며,

신들 중 우월한 신도 아니며

유일하시며

절대 주권자이시다.

백성들에게 자신의 일들을 얘기하시며

숨기지 아니하시며(8-9)

진리이신 당신이 드러나기를

그 누구보다 원하시며 기다리셨다.

하나님께서는 그 때를 아시고(14-17절)

우리는 오늘도 하나님의 때를 기다리고 있다.

 

사람은 지음받음을 하나님의 선에 따라

그 무엇보다 하나님의 형상에 따라, 말씀에의해 지음받았다.

하지만 눈이 어두워지고, 귀가 어두워짐에 따라

사명을 다할 수 없었다.

세상을 다스리라(창 1:26)는 사명을 다할 수 없었다.

 

하나님은 바로 죄를 전부 없애시고

다시 하실 수도 있으셨겠지만

그렇게 하지 않으시고

 

하나님의 뜻에 따라

사랑으로 회복하시고

 기다리시고 다스리셨다.

 

하나님께서는 야곱을 이스라엘로,

하나님의 아들, 백성들을 이스라엘로

하나님의 사랑으로 채우시며

 

변치 않으시고 계속해서

하나님 당신을,

그리고 당신이 육체를 입어 오실 것을

말씀하시고 이루셨다.

 

이스라엘이 되지 못한 이스라엘,

그들이 다하지 못한 사명을

직접 오셔서 참 이스라엘로서

하나님의 열심으로

하나님 나라를 회복하셨고

말씀을 다 이루셨다.

 

말씀은 정말 신기하다.

알려고 하면 안들어오고

늘 감동이 있고 울림이 있어도

내일이 되면 까먹는다.

그럼에도, 말씀이 힘이 되어

나를 움직이게 하신다.

 

오늘도 하나님은 말씀하신다.

나의 열심을 덜고

하나님의 열심을 믿고 따라오라고.

그것이 예수님을 닮아가는 삶이라고 하신다.

근데 그럼에도 난 한쪽귀만 열고 듣지 않는 것같다.

 

하지만 하나님께서는 듣게 하실 것이다.

언젠간.


 

<이사야 43장>

 

"두려워하지 말라" (43:1)
백성들은 자신들에게 합당한 보응이 무엇인지 알고 있으므로 두려워해야 한다.
그러나 그들은 구속자의 선택과 약속(우리를 구속하신 하나님의 의지, 우리를 당신 것(출 6:7)이라고 하신 하나님의 은혜)에 대해 들었으므로 두려워하지 말아야 한다.

 

"역사하시는 하나님" (43:3)

- 애굽: 출애굽 암시

- 구스와 스바: 하나님의 자기 백성의 구원을 위해 어떤 나라의 역사라도 바꾸실 것임을 암시

 

"하나님 당신만이 하나님" (43:10-13)

큰 재판에서 하나님의 백성은 하나님의 하나님으로서의 유일무이한 실재를 증언할 하나님의 증인이다. 행 1:18에서 예수님은 마찬가지로 사도들을 자신의 증인이라고 선언하신다. 이 구절들의 히브리어 본문에는 열아홉 단어가 1인칭 단수형(나는, 나를, 나의)으로 되어 있다. 여호와께 대한 이스라엘의 배타적 충성과 열방을 향한 그들의 증언은 그들의 정체성을 규정한다.

 

"이전 일을 기억하지 말며 옛날 일을 생각하지 말라. 보라 내가 새 일을 행하리니" (43:18-19)

출애굽은 하나님의 능력 고갈이 아니라 새로운 출애굽 같은 구원의 패턴 제공. 과거(출 14:21-30) 속에서 살지 말고 또 다른 출애굽을 통해 바벨론에서 고향으로 데려오실 것을 고대해야 한다.

 

"궁극적인 출애굽" (43:20-21)

하나님의 궁극적 목표는 하나님의 백성이 하나님을 찬송하게 하려는 것

- 피조물이 허무한 데 굴복하는 것은 자기 뜻이 아니요 오직 굴복하게 하시는 이로 말미암음이라. 그 바라는 것은 피조물도 썩어짐의 종 노릇 한 데서 해방되어 하나님의 자녀들의 영광의 자유에 이르는 것이니라(롬 8:20-21)

 

"영적 무관심" (43:23-24)

유대 민족은 바벨론에 포로로 끌려와 있는 동안 모세의 언약의 제사 제도를 계속 실행할 수 없었다. 하나님은 그들에게 불가능한 의식 준수를 요구하시지 않았지만, 그들은 영적 무관심으로 하나님께 부담을 지웠다. 

 

"우리(네 시조, 아브라함 또는 야곱, 너의 교사들, 그들의 종교 지도자들)가 함께 변론하자 너는 말하여 네가 의로움을 나타내라" (43:26-28)

- 백성들은 그들이 과연 하나님의 은총을 받을 자격이 있는지 입증할 것을 요구받는다. 백성들이 모든 자기 의를 회개하게 하기 위함이다. 그들의 기록은 실패의 기록이고, 그들의 보상은 총체적 심판이다.


(43장)

 

"두려워하지 말라, 내가 너를 지명하여 불렀다.

너는 내 것이다"

 

나를 구속하신 하나님은

오늘도 이전과 동일하게(사 43:1-7)

말씀을 통해

이전의 하나님의 일하심을 기억하게 하시고

앞으로의 하나님의 일들을 알려주신다.

 

나를 지으신 분은

나를 높이셨다.

당신의 자녀들을 높이셨다.

"내 이름으로 불려지는 모든 자, 곧 내가 내 영광을 위하여 창조한 자를 오게 하라. 그를 내가 지었고 그를 내가 만들었느니라."

 

구원은 내가 아니라

하나님께서 하시며 회복하신다.

 

하나님의 증인, 하나님의 종.

하나님께서는 완전하고 공개적인 사실 제시를 원하신다.

이를 명하신다(9절)

 

때로는

그 광야(바벨론) 가운데에서

누구보다 하나님 당신에 대해

백성들에게 알리심으로

백성들의 정체성을 알게 하신다(8-13절)

 

"이전 일을 기억하지 말며 옛날 일을 생각하지 말라. 보라 내가 새 일을 행하리니,

이제 나타낼 것이라. 너희가 그것을 알지 못하겠느냐?"

(사 43:18-19)

 

지금까지 "기억하지 말며"를 머릿속에서 지우라는 뜻인 줄 알았다.

하지만 묵상하면서 느끼게 된 바로는

하나님께서 하실 일에 대해

예전의 시선, 안경으로(출애굽 vs 새로운 출애굽)

예전의 하나님의 방식을 기대하고, 기다리지 말라는 의미로 다가왔다.

오늘 나에게는 하나님께서 확실히 하실 것이라는 것에 대한 기대가 있는지 돌아보았다.

 

당신의 백성은 당신을 위해 지었나니, 당신을 찬송하게 하려 함입니다(21절)

그러한 당신이 제 길을 열어주실 것을 믿습니다

 

환경이 나의 육체와 영을 힘들게 할 수 있어도

하나님과의 관계를 힘들게 하지 못할 것입니다.

왜냐하면 말씀이 저를 붙들기 때문입니다.

 

성령님, 하지만 무뎌짐에 의한

영적 침체만큼은 걱정이 많이 됩니다.

바벨론에 끌려간 백성들처럼

하나님을 노래하지 못할까봐 무섭습니다

 

더욱이 하나님께서는 백성들에게

두려워하지 말라고 하셨습니다.

하지만 그 두려움에

제가 불가능하다고 생각하여

하나님을 피할 때가 많습니다

주님 용서하여주세요

 

"나 곧 나는 나를 위하여 네 허물을 도말하는 자니 네 죄를 기억하지 아니하리라"

하나님의 은혜로 밖에 설명이 안됩니다.

구속하신 은혜에 감사드립니다



<이사야 44장>

 

"하나님의 일하심" (44:1-2)

하나님은 자기 백성에게 하나님이 그들에게 얼마나 전적으로 헌신하셨는지를 상기시키신다.

여수룬은 이스라엘을 뜻하는 이름(신 32:15, 33:5,26)

 

"성령의 부어짐" (44:3-4)

성령을 통해 그들은 번성하고 크게 증가(32:15, 65:17-25; 욜 2:28-32, 눅 24:49)

 

"하나님이 고레스를 사용하실 것을 예언" (44:24-45:25)

하나님은 고레스 대왕을 포로기 이후의 예루살렘을 회복시킬 자로 지명하심

 

"내 목자" (44:28)

고레스는 그 이름이 예언되어 자신이 역사를 이끌어 갈 것이라는 하나님의 주장 확증한다(왕상 13:1-3; 왕하 23:15-17)

마치,

- 전에 곧 사울이 우리의 왕이 되었을 때에도 이스라엘을 거느려 출입하게 하신 분은 왕이시었고 여호와께서도 왕에게 말씀하시기를 네가 내 백성 이스라엘의 목자가 되며 네가 이스라엘의 주권자가 되리라 하셨나이다 하니라(삼하 5:2)

유다 왕들이 실패한 이후 한 이방 황제가 하나님의 백성에게 목자의 역할을 한다. 

고레스의 정책은

- 내가 이르되 주여 어느 때까지니이까 하였더니 주께서 대답하시되 성읍들은 황폐하여 주민이 없으며 가옥들에는 사람이 없고 이 토지는 황폐하게 되며(사 6:11)

를 반전시키면서 사 44:26에 계시된 더 깊은 하나님의 목적을 표현(스 1:1-5 6:1-5, 사 45:13)

- 그의 종의 말을 세워 주며 그의 사자들의 계획을 성취하게 하며 예루살렘에 대하여는 이르기를 걱기에 사람이 살리라 하며 유다 성읍들에 대하여는 중건될 것이라 내가 그 황폐한 곳들을 복구시키리라 하며(사 44:26)


(44장)

 

하나님께서 나를 만드시며, 너는 내 백성이야 라고 하셨다.
말씀이 죽은 풀같이 숨죽어있는 나를 솟게 하셨다. 
하나님은 백성들의 정체성을 알려주시며, 사명을 재차 확인시키신다.
하나님의 열심이 내가 누군지 알게 하시고, 나를 움직이신다.
말씀을 통해서, 생각과 상상을 통해서, 열매를 통해서 하나님의 자녀임을 알려주신다.

너는 나의 증인이야!
이미 나의 이름 안에 나의 사명이 들어있다. “그리스도인”
내 육체와 정신이 알리기를 꺼려한들, 하나님은 드러내시고
때가 차면, 알리게 하신다. 

때를 기다린다고 하지만, 
분명 하나님은, 

하나님의 자녀임을 드러내는 것이 사명이자, 의무임을. 

말씀은 늘 얘기하신다.

하나님께서 만드신 모든 것들은 거룩하다.
하지만 인간이, 내가 지금도 끊임없이 생각과 마음으로 만들어내는 것이 있다. 

그 목적이 무엇인지를 생각해보면

때로는 자찬했던 그 생각들 또한 나무토막이었던 것 같다. 

때로는 내 생각과 사람의 창조물로 인해 하나님이 만드신 것을 깎아 내릴 때가 있는 것 같다.

하나님의 사람들이 만든 것도 거룩해야 되지만, 하나님보다 좋아한 나머지, 하나님이 만드신 것들을 나와 세상은 변질시켰다. 

하지만 그럼에도, 은혜로 지금도 살아가고 있다. 

다시 오시겠다고 한 그 날을 

하나님은 반드시 지키시기에, 

그 때를 하나님을 찬양하며 하나님의 백성들은 오늘도 기다린다.

나는 하나님을 잊어버리지만, 하나님은 나를 잊지 않겠다 하시며
계속해서 잡아주신다. 구속하신다.
나를 적당히 채워주시고, 

내 아픔도 내 상황도 누구보다 잘 아시고 회복시키실 것이라고 말씀하신다. 

 

포로로 잡혀있던 때, 백성들은 얼마나 힘들었을까. 

하지만 하나님께서는 그들의 모습에 더 애통해 하셨고, 누구보다 그들을 돌이킴에 열심이셨다 

이런말 하기 조심스럽지만, 지금은 정반대인 것 같다.
하나님을 피해 다른 어떤 것에 잡혀 가려는 것 같다. 

오늘도 나는 하나님을 시험할 때가 더 많다.
하나님, 저 살려주실 거죠? 제가 뭘 하든 하나님이 구원하실 거잖아요?

정말 노하셔야하지만 오늘도 말씀을 주시고 기다리시는 하나님을 바라보면서
내가 하는 것 같은 이 모든 것들이 하나님의 주관아래 이루어지고 있음이 참으로 감사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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